요 10:3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너무나 슬퍼서 주님을 못 알아 보았을 때 (요 10:17).
모든 교리를 다 알고도 여전히 예수님을 모를 수 있습니다. 교리의 지식이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보다 앞서면 그 사람의 영혼은 위험한 것입니다.
왜 마리아가 울고 있습니까? 마리아에게 있어서 교리라는 것은 그녀의 신발 밑에 있는 풀보다도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마리아를 교리적으로 조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녀를 조롱할 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녀에게로부터 일곱 귀신을 쫓아낸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이 베푸신 축복마저도 예수님 그분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 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분이 바로 그녀에게 말씀하셨던 과거의 그 예수님인 줄을 깨닫고 “선생님!”이라고 외쳤습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의심하였을 때 (요 10:27).
예수님에 대하여 뭔가 의심한 적이 있었습니까? – 다른 사람들은 경험하였지만 나는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의심한 적은 없습니까?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그들이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의심하였습니다 –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도마는 예수님의 인격적인 만지심이 필요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주님의 만지심이 우리에게 임할 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주의 만지심이 임하였을 때 이는 형언할 수 없이 귀한 것입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기심 때문에 주님을 부인한 때 (요 21:15-17).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맹세와 저주로 부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홀로 만나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사적으로 회복시키시고 그후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그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사귐의 역사가 있습니까? 제자도의 한가지 증표는 주님과의 친밀한 연결, 곧 그 어떤 것도 흔들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Oswald Chamber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