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가르침과 성령님의 가르치심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면 어떤 독자들은 충격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믿음의 기초 원리들을 배우면서도 여전히 전체를 참되게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성경의 교리에는 정통하면서도 영적인 조명이 없는 까닭에, 여전히 그 마음이 베일로 덮여져서 영적 본질에서 진리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아주 어릴 때부터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오랜 기간 교리문답을 가르치며, 더 나아가 지도자반에서 그들을 훈련시키지만 여전히 그들을 살아있는 기독교나 생명이 넘치는 경건으로 양육하지 못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교인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아무런 증거를 보이지 못합니다. 성경에 그렇게 분명하게 보여주는 구원의 표를 그들 가운데서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은 바르고 매우 도덕적이지만, 전적으로 틀에 박힌 생활이며, 전혀 빛을 비추지 못하고 않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마치 애도하는 척 하기 위하여 고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시하는 검은 띠를 두르고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과 같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코 위선자(僞善者)의 삶을 떨칠 수 없습니다.
애처롭게도 이들 중 대부분은 매우 진지합니다. 그들은 단지 눈이 멀었을 뿐입니다.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에 항상 그들의 마음 깊은 곳은 영적 실재에 굶주려 있으며, 자신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신앙의 껍데기만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최초에 그 성경에 영감을 불어 넣으신 동일하신 성령님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아무도 이 말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조차도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불을 붙이지 않는 한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종종 우리를 “성경 광신자들(Bibliolaters) “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한 비난이 아마도 비방하는 자들이 의미하는 바와 동일한 의미에서 사실이 아닐지 모르지만, 정직하게 스스로 우리 자신들에 대하여 분석해 볼 때 그들의 비난 가운데 많은 진리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 정통파 신앙인들 가운데에 성경의 영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우둔하게 본문의 문자에만 의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질에 있어서 영적인 진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그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우리 마음 앞에 항상 보존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이 진리이십니다.
우리가 열광적으로 믿고 있듯이, 그분께서 친히 말씀에 영감을 불어 넣으셨을지라도, 그분은 결코 그 문자에 제한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영적인 것은 결코 잉크나 타이프나 종이 안에 가둘 수 없습니다. 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우리에게 진리의 문자를 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보다 더한 진리를 받는다면, 반드시 그 진리를 주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갈급한 이들 가운데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우리 주님께서 결코 구원하는 진리를 주시지 않습니다.
둘째,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을 떠나서는 결코 성경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 A. W. 토져 ‘The Root of the Righteous’ 중에서



